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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트윈스

by 미네바- 2020. 10. 21.

LG 트윈스는 가장인기가 많은구단이며 서울특별시를 연고지로 하는 KBO 소속 프로 야구단이다. 전에 소개하였듯 서울종합야구장을 두산 베어스와 함께 공동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90년 1월 MBC 청룡 인수조인식을 통해 인수작업을 완료 하였으며 그해 3월 LG 트윈스로 공식 창단식을 하였다. LG트윈스로 창단후 첫감독은 백인천 감독이였고 그해 한국시리즈를 우승하였고 이어 94년 2번째 KBO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였다. 그후 97년, 98년, 02년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으나 다 준우승에 그치며 총2회우승을 하였다. LG트윈스의 역사를 알아보면 초대 감독은 백인천이었다.

백인천은 MBC 처음이자 마지막 그리고 LG 첫 감독이 되었으며 창단 첫 해 신인 포수 김동수와 노찬엽,김상훈 이 핵심타자로 활약을 하였고 투수에서는 김용수 정상흠이 원투펀치로 활약을 하였다. 창단첫해 LG트윈스는 정규시즌 1위를하여 한국시리즈에 직행하였고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을만나 4:0으로 손쉽게 우승을 차지하였다. 이때 트윈스의 당시 신바람 야구에서 시작되어 팬들을 경기장으로 끌고오는 붐이 일어나게 되었다. 94년 백인천 감독에서 이광환 감독으로 체제가 바뀌게 되었으며 감독 특유의 스타일인 자율 야구 아래에서 유지현, 김재현 , 서용빈 신인 3인방과 야생마 이상훈 마무리 투수 김용수의 활약에 힘입어 2위 태평양 돌핀스를 무려 11.5게임차로 밀어내며 정규시즌 1위를 확정지었다.

플레이오프에서 태평양 돌핀스와 가진 94년 한국시리즈에서 1차전 연장 11회말 끝내기 홈런으로 승리를 시작하여 내리 4연승으로 두 번의 한국시리즈를 4:0으로 우승하는 진기록을 달성한다. 그렇게 구단 2번째 우승을 차지하게 되며 이광환 감독은 우승 뒤 3년 재개약을 맺어 97년 10월까지 감독을 맡기로 했다. 95년 OB에게 아깝게 밀려 2위로 포스트 시즌에 합류하여 우승을 노리지만 플레이오프에서 롯데에게 시리즈 스코어 2승4패로 발목을 잡히게된다. 96년 세대교체 실패와 부상선수 속출 등으로 팀 전력이 크게 약화되며 정규 시즌 7위에 그치며 이광환 감독이 해임되었고 후임으로 수석코치 천보성이 감독으로 임명 되었다. 특히 97년에는 이병규와 임선동 차명석등의 활약에 힘입어 정규시즌 2위를 기록했다.

포스트시즌에서는 쌍방울 레이더스를 상대로 승리하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삼성라이온즈를 맞게 되었고 삼성을 꺾고 한국시리즈 까지 진출했으나 해태 타이거즈에게 1:4로 다소 허무하게 패배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98년에도 정규 리그 3위를 마크하며 포스트 시즌에서 OB 베어스 플레이오프에서 삼성라이온즈를 꺾으며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하였으나 이미 2팀을상대로 선수단의 체력이 지칠 대로 지쳐있어 결국 한국시리즈에서 현대 유니콘스에게 시리즈 스코어 2승 4패의 패배를 당하며 준우승에 그쳤고 이 해를 마지막으로 신바람 야구를 마감하게된다.

99년 매직 리그 드림 리그로 나뉘어 양대 리그 체제의 출범에 따라 LG트윈스는 삼성 한화 쌍방울과 함꼐 매직 리그에 속하며 새로운 시즌을 맞이하지만 상성과 한화에게 큰 경기 차로 밀리며 매직리그 3위에 그쳐 플레이오프에 진출에 실패했고 천보성감독이 물러나고 90년 한국시리즈 우승 멤버 출신 이광은 감독이 취임하며 새로운 시즌을 준비한다

2000년 시즌 67승3무63패를 기록하며 매직리그 1위에 올라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되지만 드림리그 2위였던 두산 베어스에게 시리즈 2:4로 지며 시즌을 마감하는데 이때 코치와 감독의 불화설이 돌게되는데 그이유는 코치들의 만류에도 마무리로 장문석을 계속 밀어붙인 것이 시리즈 패배의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이광은 감독은 옛 스승의 스타일을 많이 오마주 하였는데 특히 스파르타식 훈련을 길들여 반발이 작용했으며 이 과정에서 최고참 김용수가 이광은감독과 선수단 장악 문제를 놓고 불화를 빚어 00년 시즌후 은퇴식 없이 옷을 벗었으며 이 같은 충격 탓에 01년 시즌부터 다시 양대리그가 통합되면서 단일 리그로 진행되었으나 LG 트윈스는 시즌내내 부진을 겪었다. 결국 그해 5월 이광은 감독을 해임하고 수석코치였던 김성근을 1군 감독 대행으로 올려 시즌을 치루지만 시즌 6위에 그치고 말았다.

시즌 후 김성근 감독이 LG 트윈스 정식 감독으로 승격되었으나 스파르타식 훈련으로 일관해 프런트와 럭키회 등에서도 이광은 김성근 두 감독에 대한 반감이 심해지기도 했다.  2002년 김성근 감독 지도아래서 4위로 포스트 시즌에 턱걸이 하게된다 준 플레이오프에서는 현대를 2승으로 스윕하였고 플레이 오프에서 기아를 상대로 3:2로 승리하며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게된다. 2002년 한국시리즈는 삼성 라이온즈의 압도적 승리가 예상되었는데 그이유는 4위로 올라와 선수들의 체력이 지칠때로 지쳐있다는 평이 많았다. 그러나 LG는 시리즈를 비교적 잘 이끌어 나가며 승부를 6차전까지 넘기게 되어 승부를 알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6차전에 이미 선수들은 지친 데다가 불펜은 과부화가 걸리기 시작했고 삼성라이온즈 홈인 대구경기장에서 9회말까지 9:6으로 리드 중이였는데 아직까지도 많은 야구팬들에게 회자되는 한국시리즈가 나오게된다.

9회말 LG는 최고의 마무리투수 야생마 김상훈을 올려 세이브 상황을 지키려고하는데 이승엽에게 3점 동점 홈런을 맞았고 이상훈에 이어 등판한 최원호가 마해영에게 백투백 솔로 끝내기 홈런을 맞으면서 삼성 라이온즈 최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헌납하였다. 예상 외의 좋은 성과를 이룬 김성근 감독의 유임이 확실해 보였으나 LG 스포츠 사장과 야구단 단장은 LG의 색깔인 신바람 야구와 맞지않는다고 주장하며 한국시리즈가 끝난 후 해임을 하게된다.

김성근 감독이 해임되면서 03시즌의 LG의 성적은 급격히 추락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팬 들은 반발이 심하였고 LG프런트는 94년 한국 시리즈 우승의 주역 이광환 감독을 복귀시키며 야심차게 우승을 노렸다. 그러나 시즌 중반 때만 해도 상위권을 유지해오던 LG가 중후반 무렵 가면서 점점 떨어져 갔고 결국 정규리그 6위에 그치며 이광환감독은 사임 의사를 표명하고 2군 감독으로 내려갔다. 04년도에는 후임으로 이순철 수석코치가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순철 감독 시절 LG 팬들이 기대했던것 이하로 크게 부진 하였고 일정한 야구 스타일을 보여주지 못해 계속해서 추락의 늪으로 빠지게 된다. 04 05년 6위 06년 8위로 최하위에 그치며 한계를 절감한다. 이순철 감독은 06시즌중 물러났고 LG 어윤태 사장은 04년을 끝으로 LG스포츠 사장직에서 물러났으며 유성민 단장은 05년을 끝으로 단장직을 내놨다. 특히 FA로 영입하였던 홍현우는 역대급 먹튀 논란을 불러 일으키며 04년 11월에 계약이 끝난 후 KIA타이거즈로 2:2 트레이드 되었고 이 트레이드 떄 홍현우 선수화 같이 간 중견수는 바로 이용규였고 이트레이드는 KIA의 압승으로 끝나게 되었다.

그렇게 최하위를 하고 절치부심한 LG 프런트는 06시즌이 끝난뒤 90년 한국시리즈 우승 멤버이자 현대 유니콘스에서 4회우승을 이룬 김재박 감독을 영입하고 박명환을 FA로 영입해 오면서 새롭게 시즌을 맞을 준비를 하게 되는데 신인 이대형과 급성장한 조인성 등의 맹활약과 함께 가을야구를 하나 싶었지만 5위에 그치며 가을 야구에는 참가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도 LG 팬들에게는 희망적인 모습을 보여준 시즌이였으며 08시즌을 기대하게 했으나 박명환의 부상 조인성의 부진이 맞물리면서 불과 2년 만에 다시 꼴지(8위)를 하게된다.

09시즌 또다시 FA를 영입하게되는데 국민 우익수 이진영과 히어로즈에서 뛰던 정선훈을 영입하며 한해를 준비한 LG는 2위까지 오르며 기세 좋은 모습을 보여 줬으나, 용병 투수 옥스프링의 부진과 투수진 붕괴를 이겨내지 못하고 7위를 기록하며 부진을 이어나가게 된다. 이와중 박용택이 분전하여 타격왕을 차지하나 홍성흔을 상대로 마지막경기에서 보여준 모습은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김재박 감독이 계약 만료로 물러난 뒤 두산 베어스 2군 감독을 맡았던 박종훈 감독을 영입한 LG는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외야수 이택근을 영입하였고 방출된 이상열을 좌완 불펜 강화 차원에서 영입하여 시즌을 준비하게 되는데 시즌 개막과 동시에 여러 잡음이 발생하고 조인성의 맹활약에도 불구하고 그해 6위로 그치며 포스트 시즌 진출에는 실패하게 된다.

11년 시즌에는 초반 잠깐이지만 1위에 오르는 등 승승장구하게 되고 에이스 봉중근이 빠졋지만 리즈 주키치 박현준의 맹활약에 힘입어 30승에 선착을 가장 먼저 하였으나 점점 흔들리기 시작하였고  트레이드 마지막날인 7월 31일 넥센과 트레이드를 하게 되는데 투수 심수창과 내야수 박병호를 내주고 송신영 김성현을 영입하는 역대급으로 실수를 저지르는 트레이드를 하게되며 LG는 5위로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하게 된다. 2012년은 박종훈감독은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사임했고 후임으로 김기태가 취임했다.

그러나 투수 에이스 1선발이였던 박현준의 승부조작 사건과 FA로 이택근 송신영 조인성을 잃어 출혈이 생겨 7위에 그치며 포스트 진출 실패이자 두자릿수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최초의 팀이 되었다. 13년도는 많은 전문가들이 LG를 중하위권으로 봤으나 예상과 달리 2위를 기록하며 플레이오프에 직행하지만 두산에게 지면서 한국시리즈는 가지못하게된다.

14년 김기태 감독이 성적 부진의 사퇴를하고 양상문 해설위원을 신임 감독으로 맞이하게되었고 4위가 확정되어 준플레이오프에서 NC 다이노스를 3승1패로 누르고 넥센 히어로즈와 플레이오프를 하게되지만 1:3으로 패하면서 한국시리즈 진출에는 실패하게된다.

16년은 양상문 감독이 시즌 시작을 앞두고 리빌딩을 천명하며 팀의 색깔을 바꾸겟다고 선언했다. FA로 정상호를 영입하였다. LG는 5위로 와일드 카드 1차전에서 기아를 상대로 패했지만 2차전에서 이기며 준플레이오프에 올라가였고 넥센과의 준플레이오프에서 시리즈전적 3:1로 플레이오프에 올라갔다 그러나 NC에게 무기력하게 패배하며 한국시리즈는 가지못하게 되었다. 17년은 구단 역상처음으로 개막 6연승을 달성했지만 최종적으로 6위를 기록하여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 하였고, 시즌종료후 양상문이 단장으로 승격하고 류중일이 2020년 지금까지 17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18년 8월까지는 2 3위권 싸움을 오가며 승승장구를 하였으나 잠실 라이벌 팀인 두산 베어스에게 시즌 전적 전패를 당할 위기에 처했다가 마지막 경기에서 어렵게 승리를 거두어 1승 15패의 시즌 전적을 기록하는 굴욕을 맛봤다. 두산 베에스에게 극도의 부진한 성적을 거둔 충격으로 9월부터 급 하락세를 타기 시작했고 결국 최종적으로 8위까지 추락하여 2년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하였다.

LG는 과거부터 이어온 신바람야구라는 자신들만의 색깔이 있으며 90년~00년대까지는 성적또한 뒷받침 되는 명문 팀이였다. 지금은 비록 과거명성에 비해 뒷쳐지긴 하지만 어느팀에도 밀리지않을 많은 팬들을 보유하고있으며 언제 우승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팀이 라고 생각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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