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자이언츠는 대한민국 부산광역시를 연고지로 하는 프로 야구팀이다. 사직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울산 문수야구장을 제2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1982년에 프로 야구단으로 전환하며 리그 원년인 1982년부터 현재까지 팀명과 모구단 , 연고지가 변경되지 않은 팀은 롯데와 삼성 라이온즈 두 팀뿐이다.

롯데는 1984년과 1992년 두 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였고 별명으로는 부산의 상징인 갈매기이며 대표 응원가도 부산갈매기 이다. 롯데의 첫 경기는 82년 3월 28일 해태 타이거즈와의 경기였으며 첫날 승리를 하게되어 기분좋게 출발을 하지만 6개의팀중 5위를 기록하며 저조한 성적을 거두었다. 83년 시즌 최동원 심재원 유두열등 국가대표 선수들이 합류했으나 6개 팀중 6위로 최하위를 기록하였으다. 1984년은 롯데 자이언츠가 첫 우승을 한 시즌으로 이해 전기리그에선믄 6개 팀중 4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후기리그에서 연승가도를 달리며 정규시즌 1위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한국시리즈에서는 최동원선수가 4승1패를 기록하며 7경기중 5경기를 등판하였으며 시리즈 전적 4승3패로 우승하였고 최동원 선수는 정규리그 mvp와 27승 다승왕을 차지했으며 탈삼진 223개로 역대 탈삼진 1위라는 기록도 세웠으나 지금은 그당시에는 당연했을지 모르나 지금으로 봐서는 너무나 혹사라는 평가가 많으며 앞으로도 나와서는 안될기록으로 평가 받고있다.

92년 롯데는 V2이자 아직까지는 마지막 우승으로 기록 되고있다. 92년 정규시즌을 3위로 마친 롯데 자이언츠는 준 플레오프에서 삼성을상대로 이기고 플레이오프에 올라가 해태를 상대로 이긴뒤 한국시리즈에서 지금의 한화이글스인 빙그레를 만나 우승을 하게된다. 이때 롯데는 5명의 3할 타자 김민호 김응국 이종운 박정태 전준호를 배출했고 윤학길과 염종석이 각각 17승을거두어 롯데의 우승에 큰 힘이 되었다. 염종석은 92년에 신인왕과 투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93년에는 92년의 영광이 한번더 재현될거라는 팬들의 기대가 컸지만 정작 해주는 선수는 윤형배 전준호 둘뿐이였으며
5월까지 활약 하던 박정태의 부상이 뼈저리게 아팠다. 미비한 성적을 보이던 롯데는 6위를 기록하고 94년도에도 6위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95년에도 기대가 크지는 않았다. 군대에 입대하면서 선수로 뛸수있는 마지막 년도였기 떄문에 롯데의 전력선수가 군복무를 마치기 위해 입대한 상태여서 전력에 큰 손실을 입긴 하였다. 김용희 감독은 개막전부터 신인타자 마해영을 4번타자로 기용하며 꾸준히 기회를 주었고 마해영은 그해 18홈런을 기록하였다. 임수혁도 처음에는 하위타순으로 시즌을 시작하지만 점점 타순이 올라와 5번타자로 자리잡게 되었고 그해 롯데는 3위를 기록했다.

준플레이오프를 치뤄야 하는상황이였으나 그해 당시 규정상 3위와 4위가 3경기 이상 차이나면 준플레이오프는 치르지 않는다하여 바로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되었다 플레이오프 상대는 전년도 우승팀인 LG트윈스였다. 그당시 LG 는 20승 투수 이상훈과 김기범등 좋은 선발진을 보유하고 있었고 타자도 김재현 서용빈 등 롯데보다 전력이 월등한 팀이였다. 하지만 롯데는 LG를 꺽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저력을 보여주었으며 한국시리즈에서는 OB베어스 지금의 두산베어스를 만나게된다. 상대 OB베어스는 권명철 김상진으로 이어지는 탄탄한 선발진과 김상호 심정수와 같은 거포들을 보유하고있던 팀이다. 그러나 롯데는 이에 굴하지 않고 한국시리즈 7차전까지가는 접전을 펼쳤지만 아쉽게 OB베어스에게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게된다. 96년부터는 팀 유니폼이 바뀌며 더 기대되는 시즌이였지만 에이스투수였던 윤학길이 시범경기에 부상을 입어 전력을 이탈하고 선발에 구멍이생기기 시작하며 5위에 머물게되고 이해 전준호를 현대로 보내며 문동환 선발투수를 현대와 트레이드 하게된다.
97년에는 선발진으로서 버티던 투수는 박지철 혼자였고 최하위 성적을 거두었으며 98년도에도 용병제도가 들어왔으나 최하위에 머물게된다. 99년시즌은 리그 2위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여 삼성과 플레이오프에서만나 1승3패로 떨어질 위기가 찾아왔으나 5 6 7 차전을 모두 한점차이로 승리하며 한국시리즈에 가게된다 특히 한국시리즈 진출을 결정지은 7차전은 프로야구 사상 최고의 명승부 가운데 하나로 아직 회자가 되고있으며 7차전에서 호세의 방망이 투척 사건으로 23분간 경기가 중단되었지만 롯데는 임수혁의 극적 동점 투런홈런과 김민재의 호수비 그리고 김민재의 역전적시타로 승리하며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만 한화이글스에 밀려 준우승에 그쳤다. 마해영이 3할7푼2리로 역대 타격 5위의 기록을 세우며 타격왕에 올랐고 박정태는 31게임 연속 안타 기록을 수립한다.

스위치 히터인 펠릭스 호세가 좌우타석 홈런 연속게임 만루홈런과 1만번째 홈런의 주인공이 되는 진기록도 보여주었으며 99년 팀평균자책점과 팀타율 모두 1위를 기록하였고 팀타율 2할9푼1리로 역대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을 수립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승은 하지 못하였다. 세기가 바뀐 00년에는 양대 리그제가 시행되었던 때로 롯데가 매직리그 2위 삼성은 드림리그 3위를 기록하였으나 삼성의 승률이 더 높아 양팀간 3전 2선승제 준플레이오프 경기를 치렀다. 1차전은 당시 마산에서 최초로 포스트 시즌 홈경기를 가졌으나 1승2패를 기록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하였으며 최종 순위는 5위로 기록되어있다. 이후 롯데는 암흑기를 겪으며 07년도까지 포스트 시즌에 오르지 못하였으며 00년 4월 LG전 도중 포수 임수혁이 2루 진루후 갑자기 쓰러지며 식물인간 판정을 받아 롯데 구단과 팬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임수혁 선수는 이후 10년간의 투병끝에 2010년 2월7일 세상을 떠났다.
이 사건이후 경기장에 의무진이 상주하게 되는 규정이 생겼다. 01년 7월 김명성 감독이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후임인 백인천 감독이 부임하면서 롯데 자이언츠의 대표적인 암흑기가 오게되는데 특히 대표적으로 1번타자 감이었던 김주찬에게 거포형으로 바꾸기 위해 홈런스윙을 가르치고 이대호를 전근대적 훈련법으로 무릎 부상을 입게 했으며 손민한을 트레이드 하려 하는 등 1년도 안되는 기간동안 그가 행한 수많은 만행들이 7년간의 롯데 자이언츠 성적이 부진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후 각종 취재로 이대호를 3번이나 트레이드 하려고 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01년 부터 07년까지 롯데의 순위는 8위 8위 8위 8위 5위 7위 7위를 기록하며 7년간이나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지 못해 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이기간동안 4년연속 최하위는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기간중 펠릭스 호세선수는 역대 출루율 1위 OPS 1위의 기록을 세웠다.

05시즌 초반에 5연승과 함께 1위로 출발하였으나 여름 이후부터 선수들이 처지기 시작하여 결국 5위로 시즌을 마감하였다. 한편 1선발 에이스였던 손민한은 18승에 평균자책점 1위를 기록하여 리그 MVP를 수상하였으며 17선발승으로 86년도 선동열의 종전 정규시즌 MVP최다 선발승과 타이를 이뤘지만 그이후 류현진 리오스에 의해 깨지기도 했다.
08년도 롯데는 대대적인 개편을 하게되는데 미국 메이저리그 선출인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부임한 08년 롯데 자이언츠는 정규 시즌3위를 기록하였다. 9월2일에는 팀역사상 최다연승기록인 11연승을 기록하였고 8년만에 준 플레이오프행을 확정지었다. 필자도 부산사람으로써 이때 사직 야구장을 자주갔는데 세상에서 가장 큰 노래방이라는 별명을 얻은 사직야구장이 사직 노래방이라는 별명도얻었으며 5점을 주더라도 6점을 공격으로 매꾸는 롯데 팀 색깔이 너무나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시즌으로 기억이된다. 팬들은 8년만의 가을야구를 보답이라도 하듯 부산과 마산 홈경기에는 무려 22차례나 입장권이 매진되었고 전국 야구장마다 롯데 팬들이 모여들며 응원을 펼쳤다. 이때 사직 야구장에가면 늘 부르던 노래 부산 갈매기가 유행을 하였고 로이스터 감독은 명예 부산 시민증을 받았다. 그러나 팀은 포스트 시즌 경험이 부족한 탓에 삼성라이온즈에게 스윕당하며 플레이오프행이 좌절 되었다.

09년도 시즌은 6월초까지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었으나 롯데는 극적인 상승세를 타며 4위로 시즌을 마무리하게되어 준플레이오프나가지만 두산에게 1연승후 내리 3연패를 하며 탈락하게된다.
10시즌은 롯데가 더욱 타격이 무서운팀이 되었으며 타격에서 만큼은 다른 팀을 압도할 정도로 우세하여 롯데 타자를 만나면 몇명타자를 제외하고 투수가 공을 제대로 던지지 못할 정도로 타격에서만큼은 압도적이였다. 프로야구 최초로 이대호 선수는 도루를 제외한 타격 모든 부분1위를 달성하며 9경기 연속홈런 세계신기록도 달성하였다. 불펜 투수진이 불안정함에도 불구하고 막강한 타선 덕분에 4위로 준플레이오프에 진출에 성공하였다.
하지만 또 준플레이오프에서 두산을만나 먼저 2승을 거두나 3연패를 하며 탈락하였고 제리 로이스터 감독은 많은 팬들의 재계약 지지 운동에도 불구하고 재계약하지 못하며 떠나게 된다. 그렇게 11시즌이 오게되는데 후임으로는 당시 고려대감독이던 양승호 감독이 선임되었다 롯데를 3년 연속 포스트 시즌으로 이끌었던 로이스터를 이어 롯데를 맡은 양승호 감독은 시즌 전반기에 여러가지 변화를 주었으나 결과는 좋지 않았고 손아섭 김주찬의 부상과 용병투수 브라이언 코리의 퇴출등으로 팀이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후반기 부상선수들이 돌아오고 홍성흔도 제자리를 찾으면서 팀 타격이 살아나 시즌 팀타율 1위를 차지하였고 김사율은 모처럼 20세이브를 기록했다. 그렇게 롯데는 창단 후 처음으로 정규리그 2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 SK 와이번스에게 2승 3패로 패하며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한다.

12시즌은 롯데의 4명의 주축선수가 팀을 떠낫다 이대호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일본으로 갔으며 임경완은 FA로 SK 와이번스로 이적하고 장원준과 백업포수인 장성우가 경찰청에 입대하며 전력에서 이탈했다. SK에서 좌안 투수 이승호와 정대현을 영입하였으나 이승호는 잔부상과 겨울훈련 부족으로 부진 하였으며 정대현도 부상으로 제 몫을 하지못하였다.
공격진이 약해진 롯데는 4위로 시즌을 마감하였으며 준플레이오프에서는 박준서 용덕한 문규현등 그간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선수들이 맹활약 하고 부산에서 회복한 언더핸드 투수 정대현이 호투하며 3승1패로 시리즈를 통과한다. 그러나 SK와이번스와의 플레이오프에서 2승3패로 밀려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은 실패하게된다. 13시즌은 김주찬과 홍성흔이 떠나게 되고 주축선수들이 부상으로 이탈하며 5위로 시즌을 마무리 하게된다.
14시즌은 FA최대어 중 하나였던 강민호 불펜으로 활약한 강영식을 잔류 시켰으며 두산의 최준석을 영입하고 토종에이스 장원준 백업포수 장성우가 전역을하며 팀에 큰 힘을 보태게된다. 그러나 7위로 시즌을 마감하며 2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하게되자 감독이였던 김시진 감독은 사임하게 된다. 15시즌은 김시진 감독이 물러나고 이종운 감독이 부임했다 타격코치로는 장종훈을 타격코치로 영입했고 사도스키가 해외 스카우트 코치로 오게된다. 그러나 FA로 장원준과 마당쇠 역할을 해주던 김사율 유격수 박기혁이 FA로 팀을 이탈하였고 5월까지 중위권 싸움을 하던 롯데는 6월이후 급격히 추락하기 시작하며 8위로 시즌을 마감하게된다. 특히 이시즌 롯데 불펜은 방어율 5.43 으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16시즌은 이종운 감독을 경질하고 조원우 감독을 2년계약하게 되었으며 손승락 윤길현선수를 FA로 영입했다. 그리고 6월 노경은을 고원준과의 맞트레이드로 영입하였다.

17시즌은 이대호가 메이저리그에서 복귀하여 롯데자이언츠로 다시 오게되었으며 이대호복귀로 타선이 살아나며 시즌 초반 상승세를 달리다 5월들어 투타 밸런스가 깨지며 주춤하기 시작했다. 1위였던 순위는 7위까지 추락하였다.
그러나 다시 상승세를 타며 3위를 기록 준플레이오프에서 NC에게 패배하며 플레이오프진출은 하지못하게된다.
시즌 종료후 강민호와 황재균이 FA로 떠나게 되며 민병헌 채태인을 영입하였다.
19시즌에는 조원우 감독이 물러나며 양상문 감독이 오게되나 부진을 면치못하고 양상문 감독은 이윤원 단장과 함께 동반 자진 사퇴하였으며 9월에 최하위가 확정 되어 15년만에 최하위를 기록하게된다.
롯데는 삼성라이온즈와 함께 원년 부터 팀이름을 바꾼적이 없는팀이며 팀인기로는 2위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KBO최고의 인기 구단임에는 틀림이없다고 생각이든다. 그러나 우승은 92년도가 마지막이였다는게 아쉬울 따름이며 롯데는 언제나 화끈한 야구를 하는 팀으로 필자는 기억을 한다.

롯데의 응원문화는 KBO에서 최고라고 생각을 하며 언제나 화끈한 야구를 보여주는 롯데 자이언츠를 응원하며 이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